티스토리 뷰
목차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AI 툴을 돌리다가 발열 때문에 노트북이 위잉 소리를 낼 때,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우아해 보이는 디지털 작업이 사실은 엄청난 금속과 전기를 갈아 넣는 육중한 가동이구나, 하고요. 희토류, 리튬, 코발트 같은 핵심광물 없이는 AI도, 반도체도, 전기차도 한 발짝도 못 나간다는 걸 제대로 이해하게 된 건 그 이후, 한 인터뷰 글을 읽은 후 였습니다.
병목 장악: 광산이 아니라 정제 공정이 진짜 무기다
일반적으로 핵심광물 문제를 "중국에 광산이 많아서"라고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이 설명은 반만 맞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실제 수치를 보면 상황이 좀 다르기 때문입니다. 희토류 채굴 점유율은 중국이 약 60% 수준이지만, 분리·정제 공정에서는 90% 이상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자석 제조 단계로 넘어가면 그 비율은 더 올라가죠. 힘은 광산을 가진 쪽이 아니라 병목을 쥔 쪽에 있다는 걸 수치가 직접 증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병목이란 전체 공급 사슬 중 대체가 가장 어렵고, 한 곳이 막히면 연쇄적으로 모든 생산이 멈춰버리는 구간을 뜻합니다. 프리랜서 일을 하면서 제가 뼈저리게 느낀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밤새 수백만 원짜리 프로젝트를 완성했는데 마지막에 유료 폰트 라이센스 하나가 꼬여서 납품 전체가 막힌 경험, 한두 번이 아닙니다. 작지만 없으면 안 되는 부분이 진짜 권력을 쥐고 있다는 건 산업이나 일상이나 다를 게 없습니다.
중국이 이 병목을 장악하게 된 건 돈보다 시간과 사람의 문제입니다. 성질이 지독하게 닮은 17개 희토류 원소를 산업 규모로 하나씩 분리해 내는 기술, 100단이 넘는 공정을 수십 년간 운전하며 쌓아온 인력과 노하우, 그리고 수출 허가와 쿼터 제도로 공급망 전체를 하나의 밸브처럼 조절하는 제도적 역량, 이 셋이 맞물린 결과입니다. 여기에 정제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방사성 폐기물과 환경오염 부담까지 감수했다는 점도 다른 나라들이 쉽게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AI 인프라를 둘러싼 광물 수요는 소프트웨어 산업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급격히 불어나고 있습니다. 1기가와트 규모 데이터센터 하나에 구리가 약 5만 톤 들어간다는 수치가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출처: 한국지질자원연구원(KIGAM)). 구리 외에도 반도체·통신장비에 쓰이는 갈륨과 게르마늄은 중국이 이미 일본을 상대로 수출 통제를 실행한 전례가 있고, 지난해 12월에는 은에 대한 수출 관리 체계까지 강화했습니다. 전기전도성이 뛰어나 반도체와 전자부품에 폭넓게 쓰이는 은이 규제 대상에 들어왔다는 건, 이미 공급망 전쟁의 전선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게 펼쳐져 있다는 신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희토류 분리·정제: 중국 점유율 90% 이상 — 채굴보다 정제 단계가 핵심 병목
- 갈륨·게르마늄: 반도체·통신장비 필수 소재, 중국 수출 통제 전례 이미 존재
- 은: 2024년 12월 중국이 수출 관리 체계 강화, AI 시대 중요도 급상승
- 구리: 데이터센터 1GW당 약 5만 톤 소요, 수요 폭증 진행 중
중국 의존과 재자원화: 광산 지분보다 내 손의 기술이 먼저다
투자자 입장에서 핵심광물을 볼 때 "광물값이 오르면 제품 원가가 오른다"는 단순한 구도로 이해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진짜 문제는 가격이 아니라 '구할 수 있느냐'는 가용성에 있는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가용성이란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물량을 실제로 조달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전기차 한 대에 들어가는 희토류 자석의 소재 가격은 몇만 원 수준이지만, 그 자석 하나가 없으면 3,000만 원짜리 차가 공장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작년 중국의 중희토류 수출 통제로 유럽과 인도 자동차 생산 라인이 실제로 멈춰 섰다는 사실은 이론만 그런 게 아니라 현실임을 증명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 구조 안에서 어디에 서 있어야 할까요.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각도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원이 없는 나라라는 인식보다, 공급 사슬의 중·하류 구간에 강점을 가진 나라라는 관점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요? 중국이 정제라는 상류 병목을 쥐었다면, 한국과 일본은 양극재, 전해동박, 고순도 소재 같은 중류 병목을 쥐고 있습니다. 양극재란 배터리의 핵심 성능인 에너지 밀도와 수명을 결정하는 소재로, 리튬이온 배터리 원가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부품입니다. 이 역량이 아직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협상 자산이라고 봅니다(출처: 산업통상자원부).
광산 지분을 해외에서 매입하는 전략도 의미가 없진 않지만, 제련을 결국 중국에서 해야 한다면 의존 구조 자체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제련이란 광석에서 순수한 금속 성분을 분리해내는 고온·고압 공정으로, 막대한 에너지와 환경 비용이 들어 대규모 인프라 없이는 운영이 어렵습니다. 소유한다고 안보가 보장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여기서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재자원화(recycling·urban mining) 쪽에 더 눈이 갑니다. 새 외주 프로젝트가 들어왔을 때 저는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대신, 하드디스크에 쌓인 과거 기획서 템플릿을 분해해 재조합하는 방식으로 훨씬 빠르게 제안서를 완성한 경험이 꽤 많이 때문이죠. 이것이 정확히 여기에 적용된다고 봅니다. 광석은 나지 않아도 폐배터리는 쏟아지는 나라, 그 폐배터리가 우리 안의 광산입니다. 이미 쌓인 자원을 얼마나 정밀하게 분해하고 다시 쓸 수 있느냐가 앞으로의 핵심 역량이 될 것입니다.
미국의 움직임도 이 흐름을 가속하고 있습니다. 2025년 8월 백악관은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폴리실리콘 등 관련 제품에 최저수입가격제(MIP, Minimum Import Price)를 도입했습니다. MIP란 수입 신고 가격이 정해진 하한선보다 낮을 경우 그 차액만큼 추가 관세를 자동 부과하는 제도로, 단순 관세와 달리 손해를 감수하고 낮은 가격으로 뚫는 전략 자체를 원천 차단합니다. 품목별 최저가격은 폴리실리콘 kg당 21달러, 잉곳·웨이퍼 kg당 100달러, 태양광 셀 W당 0.22달러, 모듈 W당 0.38달러이며, 12월 발효 예정입니다. 핵심은 이 포고령이 미국 내 공장을 짓는 기업에 관세 면제를 열어뒀다는 점입니다. 수출해서 파는 구조에서 현지에 가서 만드는 구조로 넘어가는 전환점을 공식화한 거죠.
자주 묻는 질문
Q. 희토류랑 핵심광물은 같은 건가요?
A. 희토류는 핵심광물의 일부입니다. 핵심광물은 리튬·니켈·코발트·흑연·희토류 등 첨단산업에 필수적이고 공급 차질 시 경제·안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자원을 통칭하는 더 넓은 개념입니다. 일반적으로 희토류만 주목받는 경우가 많은데, 제가 자료를 살펴보니 갈륨·게르마늄·은처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광물들도 이미 수출 통제 대상에 올라 있었습니다.
Q.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막으면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A. 가격이 오르는 수준을 넘어 생산 자체가 멈춥니다. 실제로 작년 중국의 중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 이후 유럽과 인도의 자동차 조립 라인이 중단된 사례가 있습니다. 전기차 한 대에 들어가는 희토류 자석의 소재 가격은 몇만 원 수준이지만, 그 자석 하나 없이는 수천만 원짜리 완성차가 공장 문을 나가지 못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Q. 한국이 해외 광산 지분을 사는 전략은 효과가 없나요?
A. 지분 매입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제련을 중국에서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의존도는 그대로입니다. 또한 광산을 소유하는 것이 곧 공급 안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정제·소재화 역량을 함께 키우지 않으면, 지분을 쥐고도 결국 중국 제련 시설을 거쳐야 하는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Q. 폐배터리 재활용이 왜 핵심광물 공급망 대안이 되나요?
A. 폐배터리 안에는 리튬·니켈·코발트·망간 등 원광을 채굴하는 것과 동일한 금속 성분이 농축되어 있습니다. 이를 회수하는 재자원화 공정은 새로운 광산을 개발하는 것보다 공급 경로가 짧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없습니다. 전기차 보급이 가속화되면서 국내에서도 폐배터리 물량이 빠르게 늘고 있어, 이 분야의 정제·회수 기술이 실질적인 공급망 완충재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결론
공급망 안보는 투자라기보다 보험에 가깝다는 말이 제게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보험료는 사고가 나기 전까지 늘 낭비처럼 보입니다. 핵심광물 대응에 투입하는 예산과 시간도 아무 일이 없는 몇 년 동안은 과잉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좀 제 경험상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실패는 자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몇 년을 버티지 못해서 일어납니다.
투자자로서, 혹은 제조업에 연관된 일을 하는 분이라면 리튬 시세 차트보다 "이 회사는 몇 개월 치 재고와 몇 개의 공급처를 확보하고 있는가"를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업무에서 소스 다변화 없이 단일 채널에만 의존했다가 납품이 막힌 경험이 있습니다. 규모만 다를 뿐, 구조는 같습니다. 내 안의 폐배터리를 먼저 정제하는 것, 그게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참고: 네이버페이 머니스토리 어피티 머니레터 팀과 박준혁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선임연구원님의 인터뷰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