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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가 내렸다는 뉴스를 보고 안도했는데, 막상 주유소 가서 보면 가격은 그대로여서 의아했던 경험 있지 않으신가요? 이번에는 그 이유를 조금 더 구조적으로 살펴보고 제가 읽은 글과 생각 또한 정리해서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최근 유조선 운임이 원유 가격의 25%를 차지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고, 한국처럼 원유를 멀리서 사다 쓰는 나라는 유가가 내려도 체감하기 어려운 구조에 놓였습니다.
유가는 내렸는데, 왜 도입가격은 그대로인가
배달 앱을 켤 때마다 드는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메뉴 가격은 그대로인데 심야 할증이 붙으면 배달팁이 6,000원이 되는 순간, 10,000원짜리 떡볶이가 갑자기 16,000원짜리가 되는 그 느낌 말입니다. 지금 원유 시장이 정확히 그 구조입니다.
서부 텍사스산 경질유(WTI) 현물가격이 배럴당 95달러 수준으로 내려왔지만, 한국이 실제 도입하는 원유의 가격은 여기에 운임을 얹어야 합니다. 현재 미국에서 아시아로 오는 초대형 유조선(VLCC·Very Large Crude oil Carrier)의 운임이 배럴당 26달러에 달합니다. VLCC란 200만 배럴 이상의 원유를 한 번에 수송할 수 있는 초대형 유조선으로, 글로벌 원유 장거리 수송의 핵심 수단입니다. 여기에 전쟁 리스크 보험료까지 더하면, 한국 정유사가 실제로 사들이는 원유의 도입단가는 120달러를 훌쩍 넘어섭니다.
역사적으로 WTI 가격 대비 운임 비중은 2~3%에 불과했습니다. 팬데믹 이후 보복 소비가 팽창하던 시기에도 9% 수준이었고요. 이란전쟁 발발 직후 일시적으로 19.5%까지 오른 적은 있지만, 곧 안정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25%로 1970년대 오일쇼크 때도 없던 수치입니다. 당시엔 오히려 운임이 내렸으니까요. 제 경험상 이런 이중 충격 구조는 뉴스 헤드라인만 보면 절대 보이지 않습니다.
톤마일 증가가 만든 구조적 공급 부족
프리랜서 외주 미팅을 하다 보면 이런 날이 있습니다. 평소엔 회사 근처에서 30분이면 끝나는 미팅이었는데, 어느 날 클라이언트가 왕복 3시간짜리 장소로 오라고 합니다. 이동 자체에 하루가 날아가고, 정작 본업 할 시간이 사라지죠. 동선이 길어지면 전체 효율이 무너진다는 걸 몸으로 느끼는 순간입니다. 지금 VLCC 시장이 바로 이 상황입니다.
톤마일(Ton-Mile)이란 수송 화물량과 운항 거리를 곱한 값으로, 선박이 실제로 얼마나 '일을 했는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페르시아만의 사우디 라스타누라 항구에서 중국 닝보항까지는 편도 약 6,000해리, 왕복 40일이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미국 멕시코만에서 극동 아시아까지는 1만 5,500해리, 왕복 105일이 걸립니다. 같은 200만 배럴을 실어도 배가 바다 위에 머무는 시간이 2.6배 이상 늘어납니다.
이란전쟁으로 중동에서 일평균 약 1,000만 배럴 상당의 원유 생산이 증발했습니다. 한국, 일본, 중국 모두 대체 공급원을 찾아 미국으로 달려갔고, 그 결과 연간 10억 배럴 기준으로 필요한 VLCC 선복량이 55척에서 144척으로 급증했습니다. 선박 숫자는 그대로인데 각 선박이 훨씬 오래 바다 위에 떠 있어야 하니, 가용 선복이 급감한 것과 같은 효과가 납니다.
- 중동→극동 편도 거리: 약 6,000해리, 왕복 40일
- 미국 멕시코만→극동 편도 거리: 약 15,500해리, 왕복 105일
- 연간 10억 배럴 기준 필요 선복: 중동 노선 55척 → 미국 노선 144척
- 톤마일 증가 배율: 약 2.6배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아라비아해에서 극동으로 향하는 VLCC의 정기용선환산소득(TCE)은 이미 하루 100만 달러를 돌파했습니다(출처: Bloomberg). TCE란 선주가 연료비·항만비 등 운항 비용을 제외하고 실제로 손에 쥐는 순수익을 의미합니다. 200만 배럴 한 항차에 40일이 걸리면 선주의 순수익만 4,000만 달러, 배럴당 20달러에 달하는 셈입니다.
VLCC 부족을 증폭시킨 장금상선의 싹쓸이
프리랜서 시장에서 이런 상황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단가 좋은 외주 공고가 떴다 싶어 지원 준비를 하는데, 알고 보니 대형 에이전시 하나가 그 기업의 연간 외주 물량 전체를 독점 계약으로 묶어버렸다는 겁니다. 일반 프리랜서가 뛰어들 틈새 자체가 사라진 거죠. 제가 경험한 그 황당함이 지금 VLCC 스폿 시장에서 정확히 재현되고 있습니다.
이란전쟁 발발 전후로 중고 VLCC 시장에서 대규모 매입에 나선 곳이 있습니다. 한국의 장금상선(Sinokor)입니다. 세계 최대 해운사 MSC와 손잡고 약 70척을 추가 확보해, 두 회사 합산 선복량이 100~130척으로 추정됩니다. 전체 VLCC 선단(약 912척)의 13~14%, 스폿 시장 가용 선복(300~350척)의 최대 30%를 사실상 한 세력이 쥐게 된 겁니다.
장금상선은 1989년 한중 수교 이전 양국 정부 승인 아래 설립된 합작사 '장금유한공사'가 모태입니다. 현재는 정태순 회장이 100% 지분을 보유한 홍콩 지주사 시노코가 지배하고 있고요. MSC와의 협업으로 VLCC를 대거 매입한 법률적 주체는 장남이 지배하는 장금마리타임과 시노탱커인데, MSC가 인수 후 지분을 50대 50으로 나눠 가졌습니다.
더 결정적인 문제는 단순히 소유권이 바뀐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장금상선·MSC 선단은 확보한 VLCC 중 상당수를 해상 부유식 저장고(FSO)로 전용했습니다. FSO란 선박을 항해에 쓰지 않고 바다 위의 원유 저장 탱크로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뚫고 나오지 못하는 이라크, 바레인 같은 산유국이 원유를 실은 채 바다 위에 띄워두는 용도로 30~50척이 묶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미 톤마일 증가로 가뜩이나 빠듯한 스폿 시장에서 가용 선박이 또 줄어든 겁니다.
고운임 시대, 최소 2년은 더 간다
회사 일과 외주 마감이 동시에 몰렸던 날, 머리가 터지기 직전이었지만 절대 멈출 수 없었습니다. 신뢰 기반인 프리랜서 시장에서 마감 펑크는 다음 계약을 날리는 일이니까요. 아무리 비용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도 멈출 수 없다는 그 구조, 정유사의 증류탑이 딱 그렇습니다. 원유가 끊기면 증류탑을 세워야 하고, 세우면 배관이 막히고, 막힌 걸 뚫는 데 또 천문학적 비용이 들죠. 울며 겨자 먹기로 어떤 운임이든 지불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비탄력적인 수요 구조가 VLCC 운임의 이론적 상한선을 정제마진(Crack Spread)이 0이 되는 시점으로 만듭니다. 정제마진이란 원유를 사서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으로 가공했을 때 남는 마진입니다. 현재 아시아 정유사들이 거래하는 싱가포르 현물시장의 복합 정제마진은 배럴당 12~18달러 수준입니다(출처: S&P Global Commodity Insights). 바꿔 말하면 운임이 여기서 최대 12~18달러까지 더 오를 여지가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신규 공급 측면에서도 희망적인 신호는 빠르게 오지 않습니다. 2024년 인도된 신조 VLCC는 단 1척, 2025년에는 6척에 불과했습니다. 과거 연평균 인도량이 40척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습니다. 2026년에도 최대 30척 수준에 그칠 전망이고, 공급 부족이 실질적으로 해소되려면 2027년 이후 인도 물량이 60척 이상 되어야 합니다. 올해 상반기에만 217척의 신규 건조 주문이 쏟아졌지만, 지금 발주된 배들은 2028년에야 바다에 뜹니다.
수요 측 압력도 동시에 가중되고 있습니다. 8월부터 중국이 원유 재고 확충을 위해 VLCC 스폿 시장에 대거 등장했고, 유럽의 겨울철 난방용 경유 비축 시즌인 10~11월이 겹칩니다. 현재 글로벌 디젤 재고는 5개년 평균 대비 10% 이상 부족한 상태입니다. 제가 직접 이 수치들을 놓고 보니, 단기 조정이 있더라도 구조적 고운임 기조가 2년 이상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 섭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국제유가가 내렸는데 왜 우리나라 기름값은 안 내리나요?
A. 한국은 원유를 전량 수입하기 때문에 국제유가에 운임을 더한 도입가격이 실질 원가입니다. 현재 VLCC 운임이 배럴당 26달러에 달해, WTI 기준 95달러짜리 원유를 사도 도입가격이 121달러 이상이 됩니다. 유가가 내려도 운임이 그만큼 오르면 소비자가 체감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Q. VLCC 운임이 원유가의 25%라는 게 얼마나 이례적인 건가요?
A. 역사적으로 WTI 대비 VLCC 운임 비중은 2~3% 수준이었습니다. 팬데믹 이후 수요 급증기에도 9%를 넘지 않았고, 1970년대 오일쇼크 때도 운임은 오히려 내렸습니다. 25%는 기록이 존재하는 이래 한 번도 없던 수치입니다.
Q. 장금상선이 VLCC를 많이 사들이면 왜 문제가 되나요?
A. 소유권 이전 자체보다 활용 방식이 문제입니다. 장금상선·MSC 연합이 확보한 선박 중 상당수를 항해가 아닌 해상 부유식 저장고(FSO)로 전용하면서 시장에서 가용 선복이 실질적으로 줄었습니다. 스폿 시장 선복의 최대 30%를 한 세력이 통제하는 상황 자체도 가격 협상력을 왜곡시킵니다.
Q. 이란전쟁이 끝나면 운임도 바로 내려가나요?
A. 바로 내려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이 중동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면, 미국·서아프리카·남미 등 장거리 노선 비중이 구조적으로 늘어납니다. 톤마일 자체가 늘어난 상태에서 신조 VLCC가 충분히 공급되는 시점인 2027~2028년까지는 운임 정상화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Q. 정제마진이 0이 되면 정유사는 어떻게 되나요?
A. 정제마진이 0이라는 건 원유를 사서 석유제품을 만들어 팔아도 남는 게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 수준에 이르면 정유사는 가동률을 낮출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석유제품 공급 부족으로 이어집니다. 현재 아시아 복합 정제마진은 배럴당 12~18달러 수준으로, 운임이 이 폭만큼 더 오를 여지가 이론적으로 존재합니다.
결론
이번 상황을 들여다보면서 가장 크게 든 생각은, 우리가 '유가'라는 숫자 하나에만 집중해 왔다는 겁니다. 하지만 원유는 배달 음식처럼 운임이 따로 붙고, 그 운임이 지금처럼 폭주하면 유가 하락이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중동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수록 톤마일 증가의 충격을 온몸으로 받는 구조이고, 한국은 그 취약점이 큰 나라 중 하나입니다.
단기적으로는 사우디의 셔틀 운송 방식이 유가 안정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만 VLCC 신조 공급 부족, 중국의 비축 수요, 유럽 디젤 성수기가 겹치는 구조적 문제는 2~3년 단위로 봐야 합니다. 공급처 다변화와 운임 헤지 전략을 어떻게 짤 것인지가 앞으로 한국 에너지 수급의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