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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양의 모습이 묘하게 이 포스팅을 적는 제 심정을 나타내는 것 같아 가져왔습니다) 올해 3분기, 저는 점심값도 아까워서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때운 날이 꽤 있었습니다. 뒤늦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매수했다가 3분기 급락장을 정통으로 맞은 결과입니다. 계좌는 파랗고, 마음은 무겁고, 그러면서도 앱을 끄지 못하는 악순환. 이 글은 그 경험에서 출발합니다.
10분마다 계좌 확인, 그게 손실을 키웠습니다
프리랜서 마감을 앞두고 집중해야 하는 순간에도 저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습니다. 파란 숫자를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고, 다시 작업 화면으로 돌아오는 패턴이 하루에 수십 번 반복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일 효율은 바닥을 쳤고, 손실액은 줄지 않았습니다.
이런 심리 뒤에는 레버리지 ETF 과열이라는 배경이 있었습니다. 레버리지 ETF란 기초지수 수익률의 2배 또는 3배를 추종하도록 설계된 상장지수펀드입니다. 쉽게 말해 지수가 1% 오르면 2~3% 수익이 나지만, 반대로 떨어질 때도 손실이 배로 쌓이는 구조입니다. 올해 5월 말 유가증권시장 최대 일거래대금을 기록하던 날, 레버리지 ETF 거래대금만 14조 원을 넘었습니다. 그러다 금융당국이 기본예탁금을 3,000만 원으로 올리고 사전교육을 강화하자 거래대금이 불과 몇 달 만에 93% 급감했습니다(출처: 금융감독원).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규제 하나로 거래대금이 93%나 줄었다는 건, 그 시장을 떠받치던 사람들 대부분이 소액 단타 매매자였다는 뜻입니다. 저도 그 흐름에 무의식적으로 편승하려 했고, 결국 고점 근처에서 물린 셈이 됐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말이 딱 맞는 처방이었지만, 그 외양간 안에 제 소가 들어 있었습니다.
- 레버리지 ETF 거래대금: 5월 말 14조 원 → 9월 말 3조 원대로 축소
-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같은 기간 거래대금 93% 급감
- 기본예탁금 3,000만 원 상향, 사전교육 3시간 의무화 조치 시행
"본전만 오면 판다"는 그 생각이 가장 위험합니다
당근마켓에서 10만 원에 산 물건을 팔려고 내놓을 때, 시세가 5만 원이 돼도 선뜻 그 가격에 올리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얼마에 샀는데'라는 생각이 발목을 잡는 겁니다. 주식도 똑같았습니다. SK하이닉스가 3분기에만 29.7% 빠지는 걸 지켜보면서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본전만 되면 다 팔아버리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행동재무학에서는 이 현상을 처분효과(Disposition Effect)라고 부릅니다. 처분효과란 이익이 난 주식은 너무 일찍 팔고, 손실이 난 주식은 필요 이상으로 오래 들고 있는 심리적 편향입니다. 손실의 고통은 끝까지 견뎌 놓고 막상 원금을 회복하는 순간 안도감에 매도 버튼을 누르는 것, 이게 처분효과의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제가 이 함정에 빠졌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여기에 더해 앵커링(Anchoring)이라는 편향도 작동합니다. 앵커링이란 처음 접한 숫자에 판단이 끌려가는 현상입니다. 많은 투자자들의 머릿속에 코스피 9,000포인트가 기준점처럼 박혀 있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고점에서 얼마나 빠졌는지로 싸고 비쌈을 판단하면, 막연한 저가 매수나 막연한 비관 둘 중 하나로 흐르기 쉽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주가의 싼 지 비싼지는 고점이 아니라 기업이 실제로 벌어들이는 이익과 견주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싸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손이 안 가는 이유
9월 23일 기준 코스피의 선행 PER(Forward PER)은 6.96배였습니다. 선행 PER이란 현재 주가를 향후 12개월 예상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시장이 미래 실적 대비 얼마나 비싸게 거래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전 세계 주요 증시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었습니다(출처: 한국거래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이른바 '삼전닉스')를 제외하고 나머지 종목만 추려봐도 선행 PER은 약 9.7배로 추산됩니다. PBR(주가순자산비율), 즉 현재 주가를 주당 순자산으로 나눈 지표와 함께 봐도 코스피의 단순 밸류에이션은 여전히 주요국 대비 낮습니다. 싸다는 수치는 분명합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이 숫자들을 들여다봐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건 사실입니다. 한국 증시는 밸류업 프로그램이니 뭐니 해도 주주 환원이 여전히 글로벌 대비 짠 편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처럼, 기업 거버넌스가 실질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평생 싼 채로 남을 수 있다는 의구심을 완전히 떨치기 어렵습니다. 이런 시각도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저는 지금 당장 시장을 완전히 떠나는 선택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유럽의 워런 버핏'이라 불리는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주가와 펀더멘털의 관계를 주인과 강아지에 빗댔습니다. 개는 앞서 달리기도 하고 뒤처지기도 하지만, 결국 주인 곁으로 돌아온다는 비유입니다. 잘 쉰다는 건 시장을 박차고 나가는 게 아니라, 계좌 앱을 덜 열면서 시장 안에 머무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계좌가 마이너스인데 지금 손절해야 할까요, 버텨야 할까요?
A. 빌린 돈으로 투자한 게 아니라면 손절보다 보유가 나을 수 있습니다. 다만 '본전 오면 팔겠다'는 심리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처분효과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내가 얼마에 샀는지보다 그 기업이 앞으로도 이익을 낼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편이 훨씬 냉정합니다.
Q. 레버리지 ETF 규제 이후 시장이 안정됐다고 볼 수 있나요?
A. 과열 지표는 분명히 식었습니다.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 발동 빈도가 줄었고, 레버리지 ETF 거래대금도 93%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지정학적 리스크, 미중 무역 분쟁, AI 수요 지속 여부 등 시장 방향을 바꿀 변수는 여전히 많아 안정보다는 '소강'이라는 표현이 더 맞습니다.
Q. 코스피 선행 PER이 낮다고 하는데, 그게 진짜 저평가 신호인가요?
A. 수치 자체는 저평가 신호에 가깝습니다. 삼전닉스를 제외하고 나머지 종목만 봐도 선행 PER 9.7배 수준으로 주요국보다 낮습니다. 다만 PER, PBR 같은 지표만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고, 주주 환원 문화나 기업 거버넌스 개선이 뒷받침돼야 이 저평가가 실제 수익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Q. 급락장에서 심리적으로 버티는 현실적인 방법이 있나요?
A. 제가 직접 써봤는데 가장 효과적이었던 건 단순히 앱 알림을 끄는 것이었습니다. 확인 빈도를 하루 1~2회로 줄이니 업무 집중도도 올라가고, 작은 등락에 감정이 흔들리는 횟수도 줄었습니다. 코스톨라니식으로 말하자면 '수면제'는 못 먹더라도 '알림 차단'은 할 수 있습니다.
결론
급락장에서 제가 배운 건 하나입니다. 시장을 떠나는 것과 쉬는 것은 다릅니다. 계좌 앱을 하루 열 번 여는 대신 두 번만 열고, 본전 근처에서 밀려오는 처분효과를 인식하면서 버티는 것, 그게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투자 행동이라 여겨집니다.
요즘 밸류에이션이 싸다는 건 알지만 확신이 서지 않는 것도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시장 밖으로 완전히 나가는 선택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불확실성이 클 때일수록, 자리를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렵고 가장 중요한 결정이기 때문입니다.